2026. 9. 11. 13:45ㆍ영화 리뷰

타이카 와이티티 | 2017.11.03 | MCU | 130분
영화 리뷰에 앞서
토르 시리즈는 번개와 망치보다 금빛 궁전의 무거운 공기가 먼저 떠올라서, 타이카 와이티티가 맡았다는 소식이 꽤 낯설었다. 예고편의 가벼운 농담이 신화적인 무게를 흐릴까 조금 걱정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웃음이 무너지는 나라를 버티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를 아스가르드를 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토르가 왕국이라는 장소를 붙드는 대신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로 봤다.
초반부터 토르는 이미 집을 잃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처럼 움직인다. 수르트에게 묶인 채 농담을 던지는 태도도 대담해서라기보다, 아버지와 나라가 흔들린다는 말을 진지하게 붙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으로 읽혔다. 아래에는 중요한 장면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다.
부서지는 천장 아래의 귀환
사슬에 매달린 토르가 수르트와 이야기하다 천천히 빙글 도는 장면은 이 영화의 첫 리듬을 정한다. 불타는 동굴에서도 그는 협박에 곧장 반응하지 못하고, 회전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웃긴데 나는 그 느슨함이 쓸쓸했다. 왕자가 세상의 종말을 들으면서도 왕처럼 서지 못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적을 이기고 망치를 들면 집도 그대로 남을 거라 믿는다.
오딘을 찾아 지구에 내려온 뒤 그 믿음은 더 빨리 닳아간다. 형과 뉴욕 거리를 헤매는 모습은 궁전과 너무 멀고, 오딘은 아스가르드가 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다가 보이는 절벽의 바람, 헬라 뒤로 어두워지는 하늘, 손에서 빠져 산산이 부서지는 묠니르까지 장면들이 쉼 없이 자리를 지운다. 나는 망치가 깨질 때 무기보다 토르가 돌아갈 규칙을 잃었다고 봤다.
비프로스트가 그를 사카르로 던진 뒤의 낯선 색감도 가벼운 전환으로 보이지 않았다. 고향의 복도와 갑옷이 주던 위엄은 사라지고, 토르는 붙잡힌 사람처럼 바닥을 굴러다닌다. 처음의 그는 탈출해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는 일만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그 집은 헬라의 발밑에서 무너지고 있다. 나는 초반의 농담이 이 사실을 피하려는 마지막 버릇처럼 들렸다. 웃는 동안에는 아직 잃었다고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형제는 같은 문 앞에서 멈춘다
사카르에서 로키를 다시 만나는 장면은 두 형제가 왜 같은 곳에서 다르게 실패하는지 드러낸다. 로키는 화려한 옷과 느긋한 자리를 이미 마련해 둔다. 반면 토르는 쇠사슬 자국이 남은 채 당장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아스가르드를 입에 올리지만, 로키는 위험한 나라보다 자기가 안전하게 설 자리를 먼저 고른다. 토르가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도 형을 데려가려 하는 모습이 더 아프게 남았다.
오딘의 죽음과 헬라의 귀환을 두고 말할 때 로키의 말투는 익숙하게 가볍다. 그는 두려운 일을 농담으로 접고, 진심이 가까워지면 한 걸음 옆으로 빠진다. 토르는 그런 형을 몰아붙이면서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꺼내는 방식도 그렇다. 나는 그 장면에서 토르가 왕이 되려는 사람보다 형을 잃고 싶지 않은 동생으로 보였다.
로키가 전기 충격 장치로 토르를 쓰러뜨린 뒤 오래 말해 둔 계획을 실행하는 장면은 우습지만 가볍지 않다. 토르는 또 배신당하면서도, 이번에는 형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다 쓰지 않는다. 배를 떠나는 로키에게 상관없다고 말하는 순간, 토르는 형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 몫의 출발을 미룰 수 없어 등을 돌린다.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려면 누군가의 변화를 기다리는 일도 멈춰야 한다.
도망칠 배를 고르는 싸움
헬라가 아스가르드의 병사들을 쓰러뜨리는 동안, 토르는 검투 경기장에서 헐크와 마주한다. 이 대결은 힘을 겨루는 싸움으로 시작하지만 곧 집으로 돌아가자는 설득으로 바뀐다. 토르는 헐크의 이름을 부르고, 퀸젯의 나타샤 목소리로 친구를 다시 불러낸다. 나는 그가 여기서 처음으로 망치 없이 자기 편을 모은다고 느꼈다. 혼자 강해지기보다 갈 곳 잃은 이들을 한곳에 세운다.
발키리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아스가르드행을 거부할 때도 토르는 명령하지 않는다. 헬라에게 쓰러진 발키리들의 모습이 번쩍인 뒤, 발키리는 오래 묻은 공포를 마주한다. 토르는 그 상처를 다 알지 못하면서도 혼자 싸우러 가지 말라고 한다. 그의 말은 왕자의 호소보다 같이 돌아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부탁에 가깝다. 난잡한 색과 음악 사이에서 이 조용한 태도가 더 크게 들렸다.
오딘의 환영이 아스가르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다시 말할 때, 토르는 마침내 번개를 자기 안에서 끌어낸다. 한쪽 눈을 잃은 얼굴은 아버지와 겹치지만 그 힘만으로 헬라를 끝낼 수는 없다. 그는 수르트를 불러 고향을 무너뜨리는 위험을 받아들인다. 나라를 남기려다 사람을 잃는 대신, 사람을 태운 배를 먼저 띄운다. 나는 이 선택이 큰 승리보다 가장 어려운 포기처럼 느껴졌다.
불타는 아스가르드 너머의 배
마지막 전투에서 토르는 백성들에게 다리를 건너 배로 가라고 외친다. 궁전의 벽은 무너지고 헬라는 거대한 검으로 뒤를 막아선다. 예전의 토르라면 왕좌와 성문을 먼저 지켰을 것 같은데, 여기서는 남아 싸우는 시간을 줄인다. 하임달이 아이들과 노인들을 이끄는 장면이 묠니르의 귀환보다 선명했다. 누가 왕국의 중심에 남는가보다, 누가 마지막 배에 오르는가가 더 절박해진다.
수르트가 검을 내리치고 아스가르드가 불길에 잠길 때 토르는 배 위에서 말없이 그 광경을 본다. 그 표정에는 통쾌함이 없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상실과, 이 방법밖에 없었다는 결심이 같이 남는다. 나는 그 침묵이 좋았다. 큰 결단 뒤에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는 걸 굳이 해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타는 궁전은 실패의 기념비가 아니라 더는 붙들 수 없는 것을 보내는 장면이 된다.
지구로 향하는 배 안에서 로키가 어디로 갈지 묻자 토르는 지구라고 답한다. 새 왕의 첫 명령치고는 조용하고 임시적이다. 확실한 땅도 왕궁도 없이 살아남은 이들과 다음 장소로 갈 뿐이다. 나는 이 마지막이 승리의 행진보다 낯선 이주를 시작하는 사람의 표정으로 남았다. 토르는 아스가르드를 잃은 뒤에도 사람들을 데리고 갈 방향을 고르면서 왕이 된다. 왕국은 불탔지만 그가 고른 책임은 배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
Flimdust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줄거리보다 영화가 남긴 질문과 여운을 중심으로 씁니다.
━━━━━━━━━━━━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 (0) | 2026.09.09 |
|---|---|
| [영화] 블랙 팬서: 물려받은 침묵을 바꾸는 왕의 선택 (0) | 2026.09.09 |
| [영화] 블랙 위도우: 가족을 믿는 법 (0) | 2026.09.07 |
|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옳은 말이 친구를 겨눈 날 (0) | 2026.09.06 |
| [영화] 앤트맨: 작아져서야 감당하게 된 한 사람의 자리 (0) | 2026.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