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9. 00:18ㆍ영화 리뷰

라이언 쿠글러 | 2018.02.16 | MCU | 134분
영화 리뷰에 앞서
마블 영화 안에서 와칸다는 늘 반짝이는 금속과 비밀 기술로 먼저 기억됐는데, 막상 단독편을 보기 전에는 그 화려한 나라가 한 사람의 슬픔까지 품을 수 있을지가 더 궁금했다. 채드윅 보스먼의 조용한 얼굴이 왕 역할과 어울린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나는 그 조용함이 얼마나 흔들릴지 보고 싶었다. 나는 이 영화를 와칸다의 위대함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침묵을 고치려는 티찰라의 성장으로 봤다.
티찰라는 처음부터 용감한 전사지만, 왕이 되는 법은 싸움을 잘하는 일보다 오래된 규칙을 의심하는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묵직한 장면은 비브라늄이 번쩍일 때보다, 아들이 아버지의 선택을 되묻는 순간이었다. 아래에는 중요한 장면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다.
폭포 위에 세워진 왕의 자리
초반의 폭포는 와칸다가 가진 힘을 가장 크게 펼쳐 놓는 공간이다. 절벽을 따라 모인 사람들의 옷은 선명하고, 북소리는 발밑을 밀어 올리며, 티찰라는 그 한가운데에서 왕이 되기 위해 초능력까지 내려놓는다. 나는 그 설정이 멋있으면서도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이겨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방식이, 축제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찰라가 음바쿠와 마주 설 때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보다 이미 정해진 절차를 무사히 통과하려는 긴장이 먼저 비친다.
그 긴장은 티찰라가 좋은 사람이라서 더 선명하다. 그는 자비를 알고, 나키아의 말도 듣고, 여동생 슈리에게 장난도 친다. 그런데 왕이 된 직후 그가 붙드는 건 아버지가 남긴 나라의 모습이다. 국경을 닫고, 필요한 사람을 멀리서 돕고, 내부의 평화를 우선하는 방식 말이다. 나는 그가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와칸다가 숨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도 있었고, 왕국을 지키려는 마음도 진심이었으니까. 다만 그 진심이 너무 오래 규칙이 되면,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늘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폭포 위 결투는 왕관을 얻는 장면이라기보다 티찰라가 아직 아버지의 답을 그대로 들고 있다는 확인처럼 보였다. 옷을 벗고 힘을 내려놓은 몸은 공평해 보이지만, 그가 올라설 자리 자체는 이미 조상들이 만든 틀 안에 있다. 나는 그 넓고 푸른 공간이 이상하게 숨 막혔다. 티찰라는 승리한 뒤에야 왕이 되지만, 정작 자기 목소리로 나라를 바꾸는 일은 훨씬 뒤에 시작한다. 그 간격이 이 영화의 액션보다 더 오래 붙잡혔다.
나키아가 건넨 바깥의 목소리
나키아는 티찰라를 설득할 때 거창한 구호를 꺼내지 않는다. 그녀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다른 나라에서 본 아이들과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와칸다가 가진 것을 왜 꼭 숨겨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 말은 티찰라에게 공격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가까운 사람이 조심스럽게 내민 사실이라서 더 피하기 어렵다. 나는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마다 연인 사이의 로맨스보다, 서로가 보지 못한 세계를 대신 들고 온다는 감각이 좋았다. 나키아의 눈에는 왕궁의 안정이 아니라 국경 밖에서 계속되는 위기가 먼저 들어와 있다.
티찰라는 그녀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게 더 아쉽고 현실적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키아의 능력을 믿고, 위험한 임무에도 그녀를 보낸다. 하지만 나라의 방향을 정하는 자리에서는 아버지가 지켜 온 방식으로 돌아간다. 가까운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것과 그 말 때문에 자기 자리를 바꾸는 일은 다르다는 걸, 두 사람의 대화가 조용히 드러낸다. 나는 이 차이가 티찰라의 약점이라고 봤다. 그의 품위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지만, 품위만으로는 오래된 침묵을 끝내지 못한다.
나키아가 떠나는 장면에는 원망을 길게 말하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그래서 티찰라가 나중에 그녀를 다시 부를 때도 단순히 사랑을 되찾는 순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외면했던 질문을 이제야 따라가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나는 나키아가 티찰라를 바꿔 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존재하던 바깥의 목소리를 계속 들려줄 뿐이다. 티찰라가 그 말을 자기 결정으로 받아들일 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왕과 전사의 거리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려는 동료의 거리로 조금 달라진다.
복수의 언어를 들여다보는 밤
킬몽거가 왕궁에 들어와 자신의 이름과 상처를 꺼내는 장면은 언제 봐도 공기가 바뀐다. 그는 와칸다의 기술을 탐내는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그 나라가 버려 둔 피로 돌아온 사람이다. 에릭의 목소리는 거칠고 빠르지만, 티찰라의 앞에서만큼은 오래 참아 온 질문을 또렷하게 꺼낸다. 왜 아버지는 죽었고, 왜 자기만 남겨졌고, 왜 와칸다는 자신을 외면했는가. 나는 그 질문이 정당한 방식으로 던져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 질문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동시에 마음에 걸렸다.
티찰라가 결투에서 밀려나는 순간은 힘이 부족해서 벌어진 패배처럼만 읽히지 않았다. 그는 킬몽거의 분노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서 있지만, 사실 그 분노의 뿌리는 자기 아버지가 남긴 선택에 닿아 있다. 조린의 죽음과 어린 에릭의 방치는 왕가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뒷방에 밀어 넣은 사건이었다. 티찰라는 그 비밀을 알고도 한동안 아버지를 영웅으로만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킬몽거는 티찰라의 적이기 전에, 그가 물려받은 침묵이 만든 가장 날카로운 증거였다.
나는 킬몽거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분노는 세상을 다시 상처 입힌 사람들의 몸으로 증명하려 하고, 그 길은 이미 다른 폭력을 품고 있다. 그런데 티찰라가 그를 단지 악당으로 밀어내지 않고, 조상들의 방에서 아버지를 향해 화를 낼 수 있게 되는 과정은 중요하다. 티찰라는 그 밤 이후에야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과거의 모든 선택을 옳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인다. 왕이 된다는 건 선대의 이름을 깨끗하게 닦는 일이 아니라, 그 이름이 남긴 균열을 자기 손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양의 바다에서 바뀐 대답
마지막에 티찰라와 킬몽거가 함께 내려다보는 와칸다의 석양은 전투가 끝난 뒤라 더 조용하다. 킬몽거는 감옥에 갇혀 살기보다 바다에 뛰어든 조상들처럼 죽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 대사가 멋있어서보다, 끝까지 누구의 도움도 믿지 못하는 사람의 고집처럼 들려서 슬펐다. 티찰라는 그를 살리려 하지만, 그 제안에는 너무 늦게 도착한 손길의 무력함도 섞여 있다. 두 사람은 같은 피를 나눴지만, 한쪽은 나라의 보호 안에서 자랐고 다른 한쪽은 그 나라가 외면한 자리에서 살아남았다.
그 뒤 티찰라가 유엔 연단에 서는 장면은 승리 선언이라기보다 대답을 고쳐 쓰는 장면이다. 그는 더 이상 와칸다의 안전만을 말하지 않고, 세상과 연결될 책임을 말한다. 나는 이 변화가 킬몽거의 방식에 굴복한 결과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킬몽거가 폭력으로 밀어붙인 질문에서 눈을 돌리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나키아가 오래전에 건넸던 말과, 아버지를 향해 터뜨린 분노가 이 짧은 연설 안에서 한 방향으로 모인다. 티찰라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대답을 반복하지 않는다.
오클랜드에 새 센터를 세우는 마무리도 그래서 좋았다. 와칸다의 기술을 세상에 자랑하는 장면이 아니라, 버려졌던 동네 한복판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겠다는 약속처럼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비행선을 올려다볼 때 티찰라는 더 이상 폭포 위의 외로운 왕이 아니다. 나는 그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기보다, 왕이 된 뒤에야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블랙 팬서에서 가장 선명한 힘은 비브라늄 수트가 아니라, 물려받은 침묵을 다음 세대에 그대로 넘기지 않겠다는 그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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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dust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줄거리보다 영화가 남긴 질문과 여운을 중심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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