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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71)

  • [영화] 이터널 선샤인: 지워지는 건 기억만이 아니었다

    미셸 공드리 | 2005 | 로맨스·SF·드라마 | 108분 나는 '이터널 선샤인'을 이별의 기억을 지우는 영화라기보다, 사랑했던 시절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키는 이야기로 봤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잊으려 하지만, 기억이 사라질수록 상대보다 자기 모습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사랑이 끝났을 때 지우고 싶은 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유난히 작아지고 못나졌던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사라지는 기억 속에 남은 내 모습조엘의 기억이 지워질 때 먼저 사라지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눈 덮인 몬탁,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던 밤, 별 의미 없어 보였던 농담과 말다툼이 먼저 무너진다. 나는 이 장면들이 슬펐던 이유가 클레멘타인이 사라져서만은 아니었다. 조엘이 그 시간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

    2026.08.09
  • [영화] 셔터 아일랜드가 남긴 기억의 안개

    마틴 스콜세지 | 2010 | 미스터리·스릴러 | 138분 안개 낀 섬에 갇힌 기억과 의심의 시작배에서 내린 테디는 처음부터 수사하러 온 사람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멀미 때문에 힘든 얼굴이라고 넘길 수도 있는데, 눈빛이 이상하게 굳어 있다. 선착장에 닿자마자 총을 맡기고, 철문을 지나고, 직원들의 안내를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도 묘하게 거꾸로 느껴진다. 외부인이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인데, 나는 오히려 원래 이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잠깐 밖을 돌다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 첫 인상이 이 리뷰의 기준이 됐다.그래서 초반의 단서들은 추리의 재료라기보다 테디가 자기 역할을 확인받으려는 장면처럼 읽혔다. 그는 계속 질문하고, 의심하고, 병원 사람들을 몰아붙인다. 그런데 답을 들을수록 사건이 선명해지는 ..

    2026.08.08
  •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찾은 몸의 언어

    스티븐 달드리 | 2000 | 드라마 | 110분 춤으로 먼저 말하기 시작한 소년빌리가 발레 수업에 발을 들이는 순간이 유난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건, 그 장면이 거창한 재능 발견처럼 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예술을 꿈꾸던 아이가 아니다. 그냥 복싱장에 있어도 좀처럼 맞지 않는 몸을 가진 아이였고, 우연히 들어간 발레 교실에서 자기 몸이 다르게 반응하는 걸 먼저 느낀다. 복싱할 때는 자꾸만 엇나가던 힘이 춤에서는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발을 구르고 뛰어오를 때의 표정에는 잘 보이고 싶다는 욕심보다, 어딘가 막혀 있던 숨통이 처음 트이는 느낌이 더 크게 보인다.집 안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 반응이 더 절실하게 읽힌다. 어머니는 이미 없고, 아버지와 형은 파업과 생계 문제로 잔뜩 날이..

    2026.08.07
  • [영화] 바빌론이 남긴 영화와 욕망의 잔상

    데이미언 셔젤 | 2023 | 드라마·음악·시대극 | 189분 소음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의 뜨거운 밤바빌론은 찬란한 영화의 시대를 복원하는 작품이 아니라, 산업의 변화가 사람들의 꿈과 몸을 어떻게 소모하는지 바라보는 영화다. 인물들은 성공을 향해 달리지만, 시대의 규칙이 바뀌는 순간 자신이 믿던 재능과 관계까지 다시 증명해야 한다. 바빌론에서 소음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의 뜨거운 밤은 단순한 장면 설명으로 끝나지 않고, 인물의 감정이 어디에서 흔들리고 무엇을 끝까지 붙잡는지 보여 주는 축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이 대목을 따라가다 보면 줄거리보다 인물의 태도와 관계의 방향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정답을 빠르게 내리지 않는 데 있다. 소음으로 시작된 할리우드의 뜨거운 밤이라는 제목 아래 모..

    2026.08.07
  • [영화] 쇼생크 탈출이 남긴 희망의 시간

    프랭크 다라본트 | 1995 | 드라마 | 142분 높은 담장 안에서 지켜 낸 한 사람의 시간쇼생크 탈출은 감옥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더 깊게는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다룬다. 앤디는 즉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작은 선택을 반복한다. 처음 쇼생크에 들어온 그는 억울한 죄수이자 완전히 낯선 규칙 속에 던져진 사람이다. 누구도 그의 결백을 특별히 궁금해하지 않고, 감옥은 사람을 교정하기보다 순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 안에서 앤디가 가장 먼저 지키려는 것은 무죄를 증명하는 서류가 아니라 자기 안의 질서를 잃지 않는 태도다. 그는 말 수가 많지 않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도 않지만,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버팀목 같은 성격이 보인다. 영화는 그 버팀..

    2026.08.05
  • [영화] 나이브스 아웃이 꺼낸 가족의 민낯

    저택에 쌓인 상속과 침묵의 무게할런의 저택은 부유한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면서 오래된 위계가 굳어진 장소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인정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대화 속에는 사랑보다 돈과 지위에 대한 계산이 먼저 보인다. 영화는 이들의 욕심을 단순한 악행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상속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떻게 사람을 서로의 삶에 무관심하게 만드는지 보여 준다. 저택의 복잡한 계단과 방들은 각 인물이 가진 비밀처럼 얽혀 있고, 장례와 수사는 곧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한 협상이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언제 돌봄이 되고, 언제 타인의 선택을 통제하는 권리가 될까. 영화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믿는 집에서 가장 약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배경으로 밀려난다. 이 공간의 무게는 돈이 많다는 사실..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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