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7. 10:43ㆍ영화 리뷰

케이트 쇼트랜드 | 2021-07-09 | MCU | 134분
영화 리뷰에 앞서
나타샤에게 단독 영화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화려한 임무보다 그가 혼자 남는 순간을 어떻게 다룰지가 궁금했다. 다른 어벤져스 곁에서는 늘 먼저 상황을 읽고 빠져나갈 길을 찾던 인물이라,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변명처럼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블랙 위도우의 과거 설명이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 다시 서로의 귀환을 선택하는 이야기로 봤다.
《시빌 워》 뒤 홀로 숨어 지내는 나타샤는 여전히 도망에 익숙한 사람처럼 움직인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능숙한 도피가 얼마나 오래된 습관이었는지, 오하이오의 짧은 가족 장면부터 조용히 꺼내 놓는다. 탈출은 늘 나타샤를 살렸지만, 이번에는 그가 떠났던 사람들 쪽으로 다시 걸어가게 만든다. 아래에는 주요 장면과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다.
도망치던 집에 처음 생긴 균열
오하이오의 저녁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불안하다. 알렉세이는 식탁에서 농담을 하고, 멜리나는 아이들에게 내일을 약속하며, 어린 나타샤와 옐레나는 잔디밭을 뛰어다닌다. 카메라가 그 집 안의 온기를 오래 붙잡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 곧바로 차에 올라타고, 총성이 따라붙고, 가족이었던 사람들은 정체를 숨긴 채 국경을 넘는다. 그 짧은 평온은 추억이라기보다 나중에 돌아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품게 되는 이상한 기준점처럼 남는다.
성인이 된 나타샤가 노르웨이의 트레일러에서 혼자 지내는 모습은 그 반대편에 놓여 있다. 창밖은 넓고, 물건은 가지런하며, 누구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로스의 추적을 피하고 위조 신분을 마련하는 솜씨는 매끈하지만, 그 능숙함이 안락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그 공간이 자유의 은신처라기보다 말을 걸 사람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방처럼 느껴졌다. 그는 혼자가 되는 법을 아주 잘 배웠고, 그래서 혼자 있다는 사실을 굳이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
옐레나가 보낸 상자와 붉은 가루는 그 정리된 방에 들어온 작은 균열이다. 나타샤는 처음에는 임무처럼 단서를 확인하고, 부다페스트의 거리에서도 감정보다 동선을 먼저 계산한다. 하지만 여동생의 흔적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싸움의 방향은 달라진다. 그가 레드 룸을 없애려는 이유는 오래된 적을 처단하는 데만 있지 않다. 한 번 도망쳐 살아남은 사람이, 이번에는 누군가를 남겨 두고 혼자 빠져나갈 수 없다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도망이 그의 특기였기에 귀환은 더 어색하고 절실하다.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부르는 자매
부다페스트의 안전가옥에서 옐레나가 나타샤에게 건네는 말들은 반가움보다 먼저 쌓인 시간을 들춘다. 둘은 포옹을 길게 하지 않고, 냉장고 앞에서 먹을 것을 찾고, 서로의 수트와 머리 모양을 놀린다. 특히 옐레나가 나타샤의 착지 자세를 흉내 내며 웃는 장면은 사소해서 좋았다. 영웅의 멋진 동작이 동생 눈에는 언니가 오래 고집한 포즈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는 그 농담이 두 사람이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첫 번째 문처럼 보였다.
옐레나는 나타샤가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을 울음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자기 삶이 선택된 적 없었다는 이야기를 꺼낼 때도 표정은 무너졌다가 금방 다시 단단해진다. 플로렌스 퓨가 그리는 옐레나는 보호받기만 하는 동생이 아니라, 언니에게 화낼 자격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다. 나타샤는 사과를 빠르게 내놓지 못한다. 레드 룸에서 빠져나온 뒤 다른 이름과 다른 팀을 얻었지만, 옐레나에게는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그의 침묵은 변명의 여지 없이 길어진다.
그래도 둘은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고, 위험한 길을 같이 고른다. 나는 이 관계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복원해서 가까워진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그 시절을 다르게 기억한다는 점을 확인한 뒤에야, 지금의 상대를 새로 대한다. 옐레나는 언니를 전설처럼 올려다보지 않고, 나타샤도 동생을 과거의 작은 아이로 묶어 두지 않는다.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부르고, 험한 말 뒤에 물을 건네는 그 리듬 속에서 둘은 피로 맺어진 가족보다 매일 다시 선택하는 편에 가까워진다.
식탁 위 거짓말을 끝까지 꺼내는 밤
알렉세이와 멜리나가 있는 농장으로 향하는 길은 재회 장면에 어울릴 법한 음악 대신 어색한 침묵으로 채워진다. 식탁에 네 사람이 다시 앉았을 때 알렉세이는 옛날 노래를 부르고, 멜리나는 손님을 맞듯 접시를 내놓는다. 나는 그 장면이 따뜻해서보다 불편해서 오래 남았다. 그들은 모두 그 집이 임무였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잠깐이라도 가족인 척했던 기억을 자기 방식으로 붙들고 있어서, 누구도 먼저 그 시간을 완전히 거짓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멜리나는 특히 쉽게 용서받을 인물이 아니다. 그는 딸들이 조종당하는 구조를 알면서도 레드 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택했고, 나타샤와 옐레나가 찾아왔을 때도 자신의 태도를 곧장 바꾸지 않는다. 다만 그가 돼지의 호흡을 멈추게 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사람의 무심함보다 오래 길들여진 체념을 봤다. 멜리나는 감정을 말하는 대신 기계를 고치고,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타인의 고통을 일정한 거리에서 처리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딸들 앞에서 늦게나마 흔들리는 표정이 더 서툴고 설득력 있다.
중반 이후의 작전은 누가 누구로 위장했는지 맞히는 재미보다, 이들이 서로에게 역할을 맡길 수 있게 된 변화가 중요했다. 알렉세이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만 딸의 눈을 마주하는 일에는 서툴고, 멜리나는 배신처럼 보이는 선택을 한 뒤에야 자기 편을 드러낸다. 나타샤는 그 둘을 완전히 믿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몸을 싣는다. 가짜 가족이었기에 생긴 상처를 지우지는 못해도,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쪽으로 함께 움직이는 밤이었다.
하늘에서 흩어진 뒤 남은 약속
레드 룸이 무너지는 마지막 구간에서 나타샤는 위에서 떨어지고, 옐레나는 아래에서 손을 뻗는다. 거대한 공중 기지가 붕괴하는 장면인데도 내 눈에는 폭발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는 팔이 먼저 들어왔다. 나타샤는 늘 누군가를 구하는 쪽에 익숙했고, 옐레나는 조종당하던 몸을 되찾은 직후에도 언니를 끌어올린다. 이 장면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구원하는 그림으로 끝나지 않는다. 둘 다 너무 늦기 전에 상대를 잡는 법을 배운 순간처럼 보인다.
드레이코프를 마주한 나타샤의 선택도 단순한 복수보다 복잡하게 남는다. 그는 과거의 임무에서 죽였다고 믿은 아이를 떠올리고, 그 죄를 레드 룸을 파괴하는 일로 깨끗하게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태스크마스터의 마스크가 벗겨진 뒤 나타샤가 먼저 다가가는 장면에는 영웅적인 확신보다 망설임이 있다. 나는 그 망설임이 좋았다. 누군가의 상처를 자기 결단 하나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래도 손을 내미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족은 다시 같은 차에 타지 않는다. 옐레나와 멜리나, 알렉세이는 다른 위도우들을 찾아 떠나고, 나타샤는 어벤져스에게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 분리가 이 영화의 관계를 약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처음의 그들은 임무가 끝나자마자 흩어지는 사람들이었지만, 끝에서는 각자 갈 길을 알면서도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나타샤가 새 수트를 입고 헬리콥터 쪽으로 걸어갈 때 나는 그가 과거를 정리해서 가벼워졌다고 보지 않았다. 떠날 곳이 생긴 사람이 아니라, 돌아올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된 듯했다.
> “The pain only makes us str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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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dust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줄거리보다 영화가 남긴 질문과 여운을 중심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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