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캔 스피크: 말은 늦게 배워도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6. 8. 21. 10:17영화 리뷰

포스터

김현석 | 2017.09.21 개봉 | 드라마 | 119분

 

영화 리뷰에 앞서

'아이 캔 스피크'를 보기 전에는 무거운 역사를 웃음으로 너무 쉽게 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나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 채 시작하는 편이 이 영화의 감정을 더 잘 따라가게 한다.  나는 아이 캔 스피크를 증언의 영화보다, 오래 침묵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다시 믿게 되는 이야기로 봤다.

아이 캔 스피크 줄거리는 민원 왕으로 불리던 나옥분이 새로 온 공무원 민재에게 영어를 배우며 숨겨 둔 과거를 꺼내는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가 큰 말을 하기 전, 한 사람이 입을 열기까지의 망설임을 오래 붙든다고 느꼈다.

 

민원 창구에서 시작된 작은 대화

나옥분이 구청 창구에 찾아와 민원을 쏟아내는 초반은 코미디처럼 가볍다. 민재는 그의 사정을 모른 채 일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나는 옥분이 매일 같은 거리를 돌고, 남의 불편을 자기 일처럼 붙드는 모습에서 단순한 고집보다 혼자 남은 사람이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봤다. 목소리가 큰 것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자기 자리가 사라질 것 같은 사람의 버릇처럼 느껴졌다.

민재는 규정을 앞세우고 옥분은 사람 사는 일을 앞세운다. 둘의 충돌은 세대 차이를 웃음으로 쓰지만, 나는 민재가 옥분의 말을 조금씩 듣기 시작하는 변화가 더 좋았다. 그는 처음에는 빠르게 민원을 끝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옥분의 집과 동네를 오가며, 서류에 적히지 않는 생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재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이 되어 간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나는 초반의 소란이 다른 모양으로 보였다. 그는 발음 하나를 익히는 데도 자꾸 멈추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말은 누구에게나 있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옥분에게는 오랫동안 닫아 둔 문이다. 민재가 선생이 되고 옥분이 학생이 되는 관계는 그래서 단순한 도움보다 조심스러운 신뢰에 가깝다. 나는 이 첫 대화들이 훗날 옥분이 자기 이름으로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작은 연습이라고 봤다.

 

민재가 끝까지 들은 옥분의 말

영어 수업을 하던 민재가 옥분의 과거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 영화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진다. 나는 그 전환이 단순히 반전을 알리는 장치로 느껴지지 않았다. 옥분은 언제나 말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한 번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민재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해야 할 일은 멋진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 옥분이 말할 때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 조용한 태도가 둘 사이의 신뢰를 바꾼다.

민재는 옥분의 상처를 대신 설명하거나 결론 내리지 않는다. 그는 화를 내고, 서두르고, 때로는 옥분보다 더 앞서 나가려 한다. 하지만 옥분은 자기 속도로 말해야 한다. 나는 영화가 이 차이를 놓치지 않는 점이 좋았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안다는 것과, 그 사람이 말할 준비가 됐을 때 듣는 일은 다르다. 민재가 배우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상대의 침묵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옥분이 민재에게 기대는 모습은 약해져서가 아니라 혼자 버티던 방식을 잠시 내려놓는 모습처럼 보인다. 민재 역시 옥분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그가 증언할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움직인다. 나는 둘의 관계가 가족 같은 말로 쉽게 정리되지 않아 좋았다. 서로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해도, 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 남는 일은 가능하다. 그 믿음이 이 영화의 따뜻함을 가볍지 않게 만든다

 

 

마이크 앞에서 되찾은 자신의 이름

아이 캔 스피크 결말의 증언 장면은 옥분이 영어를 잘하게 됐다는 결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프다. 그는 오랫동안 그 일을 자기 탓처럼 품고 살았다. 마이크 앞의 옥분은 과거로 돌아가 고통을 지우지 못한다. 다만 더는 침묵이 자신을 대신 말하게 두지 않는다. 나는 그 장면이 용감한 한마디보다, 수없이 연습하고 망설인 끝에 나온 한 사람의 호흡처럼 들렸다.

증언 뒤 옥분의 표정에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편안함이 없다. 상처를 말한다고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이름과 이야기를 숨기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그 이후를 환하게 장식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옥분이 얻은 것은 완벽한 위로나 보상이 아니라, 자기 기억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민재와 동네 사람들이 그 곁에 있는 모습도 옥분의 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혼자 남지 않게 해 준다.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 속 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날, 웃음과 먹먹함이 함께 남는 한국 영화를 찾는 날, 한 사람의 변화가 오래 남는 드라마를 보고 싶은 날 추천하고 싶다. 내게 이 영화의 마지막은 큰 연설의 승리보다, 옥분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을 거라는 감각이었다. 오래 침묵했던 사람은 말할 권리를 되찾고, 그 말은 늦게 도착해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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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dust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줄거리보다 영화가 남긴 질문과 여운을 중심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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