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정의는 거창한 말보다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2026. 8. 14. 23:41영화 리뷰

베테랑 포스터

류승완 | 2015.08.05 개봉 | 액션 | 123분

 

영화 리뷰에 앞서

유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베테랑'은 통쾌한 대사와 추격 장면으로 기억될 영화라고 생각했다. 황정민과 유아인이 맞붙는 구도가 얼마나 팽팽할지 기대하면서도, 너무 쉽게 분노를 풀어 주는 영화가 아닐지 살짝 궁금했다. 아래에는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베테랑을 악인을 잡는 수사극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일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의 이야기로 봤다. 베테랑 줄거리는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이 재벌 3세 조태오와 얽힌 사건을 파고드는 데서 시작한다. 쿠키 영상은 없고, OTT 편성은 바뀔 수 있어 시청 전 다시 확인하는 편이 낫다. 흥행 기록이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지만, 내게는 액션의 시원함보다 한 사건을 너무 쉽게 덮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손이 더 또렷했다.

 

공사장에 남은 한 사람의 말

초반 공사장에서 서도철이 사람들과 섞여 움직이는 장면을 보면, 그는 처음부터 거대한 정의를 말하는 형사가 아니다. 몸부터 앞서고, 말은 투박하고, 현장에 남은 사람의 표정을 먼저 읽는다.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의 사정도 처음에는 수많은 민원 가운데 하나처럼 보인다. 그런데 서도철은 그가 건네는 말과 손목의 상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나는 그 짧은 멈춤이 좋았다. 사건은 늘 누군가에게는 서류 한 장이지만, 그 서류가 닫히면 누군가의 생활도 같이 닫힌다는 걸 그는 몸으로 안다.

서도철의 방식은 깔끔하지 않다. 규정 안에서 차분히 증거만 모으는 인물도 아니고, 화가 나면 먼저 뛰어드는 버릇도 있다. 근데 나는 그 거침이 단순히 액션을 위한 성격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권력이 큰 사람에게 다가갈 때도, 그 사람 앞에서 자기 말투를 바꾸지 않는다. 눈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눈치를 보며 넘긴 일이 결국 누구를 다치게 하는지 이미 많이 봤기 때문 같다. 그래서 그의 분노는 멋진 포즈보다 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 가진 피로에 가깝게 들어온다.

나는 이 초반을 보며 베테랑의 통쾌함이 주먹에서만 나오지 않는다고 느꼈다. 서도철은 모두가 바쁘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려는 일 앞에서 발을 멈춘다. 사건의 크기를 아직 다 알지 못해도, 누군가의 고통을 숫자로만 처리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조태오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이 영화의 싸움은 시작된 셈이다. 내게 서도철은 대단한 영웅이라기보다, 귀찮고 위험해도 한 번 걸린 일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남았다.

 

서도철과 조태오의 다른 눈빛

조태오가 사람을 대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의 폭력보다 먼저 무심한 표정을 봤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불편한 상황이 오면 돈이나 주변 사람을 이용해 방향을 바꾼다. 조태오에게 타인은 자기 기분을 관리해 주는 장치처럼 놓여 있다. 그래서 그가 화를 낼 때도 감정이 폭발한다기보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물건을 고장 난 것처럼 다루는 느낌이 든다. 유아인의 가벼운 말투가 오히려 더 차갑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도철은 조태오를 상대하며 점점 더 지친다. 위에서는 조심하라고 하고, 주변에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고, 사건에 얽힌 사람들은 겁을 먹는다. 그때 서도철이 화를 내는 건 조태오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다들 알고도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구조가 그를 더 몰아붙인다. 나는 두 사람의 대립을 선과 악의 대결로만 읽기보다, 책임을 미루는 사람과 책임이 밀려오는 사람의 충돌로 봤다. 조태오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서도철은 그 구멍 앞에 계속 선다.

둘의 대화가 팽팽한 이유는 누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조태오는 세상이 자기 편이라는 확신을 갖고 말하고, 서도철은 그 확신이 통하지 않는 순간을 만들려고 움직인다. 서도철이 이길 수 있을지 불안한 건 조태오가 강해서만이 아니라, 조태오를 지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그래서 나는 서도철이 매번 완벽한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는 논리로 상대를 압도하는 대신, 도망칠 틈을 줄이기 위해 계속 현장으로 간다. 그 끈질김이 '베테랑'의 분노를 끝까지 버티게 한다.

 

도로 위에서 끝나지 않은 추격

결말의 추격전에서 나는 차가 부딪히는 소리보다 서도철이 멈추지 않는 리듬을 더 크게 들었다. 조태오는 마지막까지 돈과 권력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고, 서도철은 그가 빠져나갈 길을 하나씩 좁힌다. 이 장면은 액션 영화답게 빠르지만, 내게는 초반 공사장의 작은 사건이 멀리까지 이어진 결과처럼 보였다. 처음에 누군가의 말을 들었던 형사가 마지막에는 거대한 권력의 도주를 막고 있다. 규모는 달라졌지만 서도철이 붙잡고 있는 기준은 같다.

베테랑 결말이 시원한 건 조태오가 체포돼서만은 아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예외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이 도로 위에서 멈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처벌이 모든 것을 되돌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다친 사람과 망가진 삶은 그대로 남는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빠져나가려던 사람이 더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 영화 안에서는 작은 답처럼 놓인다. 그 답이 완전하지 않아서 오히려 서도철의 추격이 더 절실하게 들린다.

나는 '베테랑'을 추천할 때 속도감 있는 한국 액션을 보고 싶은 사람, 황정민과 유아인의 팽팽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 화가 난 날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범죄 영화를 찾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 영화는 답답한 현실을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손을 놓지 않으면 적어도 숨겨진 일을 드러낼 수 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내게 마지막 도로는 승리의 무대보다, 끝까지 놓지 않았던 사람의 손이 마침내 닿은 자리였다.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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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dust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줄거리보다 영화가 남긴 질문과 여운을 중심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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