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5. 00:12ㆍ영화 리뷰

*스포일러 주의
영화얘기에 앞서
2002년에 개봉한 〈드럼라인〉은 드럼이라는 하나의 악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단순히 음악을 소재로 한 청춘 영화라고 보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다. 처음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작품은 〈위플래쉬〉였다. 두 영화 모두 드럼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플래쉬〉가 완벽함을 향한 집착과 경쟁을 이야기한다면, 〈드럼라인〉은 개인의 재능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보여주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대학 마칭밴드 문화도 흥미롭다. 국내에서는 대학 응원단이나 밴드부 정도는 익숙하지만, 수백 명의 연주자와 응원단이 하나의 공연처럼 무대를 만드는 마칭밴드는 다소 생소하다.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학교의 전통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이자 경쟁이다. 그래서 영화는 드럼을 연주하는 장면뿐 아니라, 밴드 전체가 만들어 내는 리듬과 퍼포먼스를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또 하나 반가웠던 점은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가 된 조 샐다나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훗날 〈아바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 준 배우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데본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는 라일라라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특수효과가 없는 시절의 풋풋한 연기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드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리듬감 넘치는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로 접근했을 때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핵심 전개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감상 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줄거리
이야기는 뛰어난 드럼 실력을 가진 고등학생 데본 마일즈가 애틀랜타 A&T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는 자신이 최고의 드러머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대학 역시 자신의 실력을 더 크게 펼칠 무대 정도로 생각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학교에 들어선다. 하지만 캠퍼스에 도착하자마자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밴드부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입학과 동시에 혹독한 훈련이 시작되고,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엄격한 규율이 이어진다. 특히 드럼 라인을 이끄는 숀은 뛰어난 연주자이면서도 누구보다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다. 데본은 자신의 실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지만, 숀은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팀의 흐름을 무너뜨린다면 좋은 드러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의 가치관은 처음부터 정면으로 충돌한다.
데본은 연습 과정에서도 선배들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연주하려 한다. 다른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화려한 연주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밴드부는 개인 오디션이 아니라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조직이다. 수백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퍼포먼스에서는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맞춰 연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영화는 이 대비를 여러 장면을 통해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러던 중 단원들의 등급을 결정하는 실기 시험이 열린다. P1부터 P4까지 나뉘는 이 시험은 실제 공연에 설 수 있는 주전 선발과도 연결된다. 데본은 놀라운 실력으로 시험을 통과하지만, 모두를 놀라게 하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악보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뛰어난 감각과 기억력만으로 연주해 왔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대학에서는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이어지는 공연에서도 그는 팀의 질서를 무시한 행동을 반복하며 결국 밴드부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천재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개를 선택하지 않는다. 데본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숀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고,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방법을 익히면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 결국 마지막 전국 대회에서 데본은 더 이상 혼자 빛나는 연주자가 아니라, 팀 전체를 하나의 리듬으로 이끄는 드러머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귀가 즐거운 영화
영화를 다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역시 음악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였다. 물론 집에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만, 〈드럼라인〉은 사운드가 주는 에너지가 워낙 큰 작품이라 음향이 좋은 환경에서 볼수록 만족감이 커질 것 같다. 드럼 스틱이 스네어를 두드리는 짧은 소리부터 수십 명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묵직한 리듬까지, 영화는 관객이 공연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특히 공연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단순히 드러머 한 명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드럼 라인과 관악기, 응원단까지 함께 담아내면서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를 완성한다.
사실 줄거리에서는 일부러 크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데본과 라일라의 관계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로맨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 라일라는 단순히 주인공의 연인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만 믿고 살아가던 데본이 처음으로 누군가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존재이며, 무너진 자신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둘의 관계는 극의 흐름을 방해하기보다 데본의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영화가 로맨스에 지나치게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할 때 등장하고,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를 이어 간다. 덕분에 영화의 중심은 끝까지 음악과 성장에 머물러 있다. 라일라 역시 데본을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처럼 소비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를 완성하는 하나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응원단과 밴드가 함께 만들어 내는 무대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모두가 하나의 팀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가 ‘천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성장 영화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결국 모두를 압도하며 성공하는 이야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드럼라인〉은 조금 다르다. 데본은 처음부터 뛰어난 드러머다. 영화는 그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재능만으로는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여 준다. 악보를 읽지 못하는 설정 역시 단순히 위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혼자만의 방식으로 성장해 온 사람이 조직 안에서 어떤 한계를 마주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팀’이다. 공연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박자 하나가 어긋나면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전체 무대를 망칠 수 있다. 숀이 데본을 끝없이 몰아붙인 이유도 단순히 군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이 가장 먼저 팀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처음에는 답답하게만 보였던 숀의 행동도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결국 그는 데본을 무너뜨리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진짜 리더로 성장시키려 했던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위플래쉬〉와 비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꽤 다르다고 느꼈다. 〈위플래쉬〉가 완벽함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를 묻는 영화라면, 〈드럼라인〉은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함께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마지막 공연 역시 누군가를 꺾기 위한 결승전이라기보다, 데본이 처음으로 팀의 리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음을 보여 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총평
드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드럼 연주보다도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 냈다는 점이 더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재능만 믿었던 데본이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법을 배우고, 리더의 책임을 이해하며, 팀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은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시간이 꽤 지난 작품이라 영상미나 연출에서 세월의 흔적은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공연 장면이 주는 에너지와 배우들의 열정은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오히려 요즘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순수한 열정과 청춘의 분위기가 남아 있어 더 반갑게 다가왔다. 만약 〈위플래쉬〉를 재미있게 봤지만 조금 더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음악 영화를 찾고 있다면, 〈드럼라인〉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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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mdust
영화를 보고 오래 남은 감정과 생각을 기록합니다.
줄거리보다 영화가 남긴 질문과 여운을 중심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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